
사진으로 먼저 봤어요.
근데 실제로 마주쳤을 때는 달랐습니다. 트라브존(Trabzon)에서 남쪽으로 약 47km, 알틴데레 국립공원(Altındere National Park)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해발 1,200미터 절벽 면에 달라붙은 건물 군락이 나타납니다. 수멜라 수도원(Sümela Manastırı). 중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구조물을 처음 본 순간, 뭐랄까, 사람이 왜 저기다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어요.
경건함보다 먼저 오는 건 순수한 경이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궁금증.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기원: 신화와 역사 사이
공식 기록상 수멜라 수도원의 창립은 서기 3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테네 출신의 두 수도사, 바나바스(Barnabas)와 소프로니오스(Sophroni os)가 이 절벽에 성모 마리아 이콘(icon)을 모시기 위해 처음 터를 잡았다고 전해져요. 그 이콘은 복음사가 성 루카(Saint Luke)가 직접 그렸다는 전설이 있고요. 근거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학자마다 다르게 봅니다만, 이 이야기가 수도원에 부여하는 신성함은 실제로 작동했어요.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후원이 이어졌습니다.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가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초기 확장 공사 이후, 수멜라는 흑해 연안 기독교 세계의 중심 성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트레비존드 제국(Empire of Trebizond, 1204–1461) 시기에는 황실의 강력한 비호를 받으며 최전성기를 맞았어요. 황제들은 이곳에서 대관식에 준하는 종교 의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오스만 제국 아래서도 살아남은 이유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1461년 트레비존드 제국이 오스만에 의해 멸망한 이후, 수멜라 수도원은 어떻게 됐을까요. 파괴됐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오스만 술탄들은 수멜라에 대해 놀랍도록 관대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술탄 셀림 1세(Selim I)는 16세기 초에 수도원의 특권과 재산을 공식 문서로 보장했어요. 이후 여러 술탄이 이 보호를 갱신했고요.
왜였을까요. 종교적 관용의 문제였는지, 전략적 계산이었는지, 아니면 이 절벽 위 공간이 가진 어떤 영적 무게감 앞에서 정복자들조차 머뭇거린 건지. 아마 복합적인 이유였을 거예요, 확인 필요하지만.
어쨌든 수멜라는 살아남았습니다. 수백 년을. 제국이 바뀌는 동안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관광 안내서에 잘 나오지 않는 것들을 몇 가지 짚어볼게요.
첫째, 수도원 내부 프레스코화(fresco)의 층위 문제입니다. 현재 볼 수 있는 벽화들은 대부분 18세기에 덧칠된 것들이에요. 그 아래에 훨씬 오래된 층이 존재하고, 복원 작업 중에 일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표면이 '원본'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예술사적으로 이건 꽤 복잡한 문제입니다.
둘째, 이콘의 행방. 수도원 창립의 핵심이었던 그 성모 마리아 이콘은 현재 수멜라에 없습니다.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Population Exchange) 당시, 수도사들은 수도원을 떠나야 했어요. 그들은 이콘을 포함한 귀중품들을 절벽 벽 안에 숨겼다고 합니다. 이후 1930년대에 일부가 발굴되어 아테네 베나키 박물관(Benaki Museum)으로 옮겨졌고, 그 이콘도 지금 거기 있다고 알려져 있어요. 수도원과 이콘은 100년째 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셋째, 음향의 문제. 수도원 안쪽 중정에 서면 바람 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특이한 방식으로 공명합니다. 건축적 의도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서 기도하거나 노래할 때의 음향 효과는 상당합니다. 제가 있을 때 한 방문객이 작게 찬송가를 흥얼거렸는데, 소리가 이상하게 멀리까지 퍼졌어요.
1923년 이후: 폐쇄, 방치, 그리고 복원
인구 교환 이후 수멜라는 버려졌습니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된 공간은 당연히 훼손됩니다. 프레스코화 일부는 훼손됐고, 건물은 노후화됐어요. 1972년 튀르키예 정부가 박물관으로 지정하며 관리에 들어갔지만, 본격적인 복원 작업은 2000년대 이후에야 시작됐습니다.
아쉽게도 복원 과정 자체가 논란을 낳기도 했어요. 일부 복원이 지나치게 '새것처럼' 처리되어 역사적 질감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구조물 안전 문제로 수차례 일반 공개가 중단됐습니다. 가장 최근의 폐쇄는 2015년경이었고, 이후 단계적으로 재개방이 이루어졌어요 (현재 입장 가능 여부와 구역 제한은 방문 전 반드시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상황이 자주 바뀌거든요).
참,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Feast of the Assumption)에는 그리스 정교회 예배가 특별히 허가됩니다. 튀르키예 정부가 공식 허가한 예배예요. 이 날 수멜라는 잠시 다시 살아있는 성소가 됩니다.
오늘의 수멜라: 어떻게 가고,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트라브존 시내에서 수멜라까지는 차로 약 1시간 내외입니다.
트라브존 구시가지 아타튀르크 광장(Atatürk Alanı) 근처에서 출발하는 미니버스(돌무쉬, dolmuş)를 이용하거나, 렌터카가 편합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수도원까지는 도보로 올라가야 해요. 경사가 있습니다. 대략 40분에서 1시간 정도, 체력에 따라 다르고요. 트레킹화를 권합니다, 진심으로.
입장료는 아마 200~300 튀르키예 리라 선이었던 것 같은데 (환율 변동이 심해서 원화로 환산하기 어렵고, 현지에서 확인 필요합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별도로 부과될 수 있어요.
수도원 내부 공개 구역은 생각보다 넓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복원 중인 구역은 접근이 제한되고요. 기대치를 어느 정도 조율하고 가는 게 좋아요. 근데 솔직히, 내부보다 외부에서 보는 그 전경 자체가 압도적입니다. 절벽과 건물과 안개가 만드는 그 조합은, 어떤 사진으로도 완전히 담기지 않아요.
이른 아침, 08:47 같은 이른 시간에 도착하면 관광버스가 오기 전 비교적 한적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안개가 남아 있을 때도 있고요.
강남에서 수멜라를 생각하는 이유
이 기사를 쓰면서 계속 이상한 느낌이 있었어요.
수멜라는 강남이 아닙니다. 당연히.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감각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예요. 근데 Secret World에서 이 공간을 다루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에 사는, 혹은 강남의 감각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수멜라 같은 장소는 특별한 방식으로 작동하거든요.
뭐랄까, 프리미엄의 정의를 흔드는 공간이에요. 럭셔리 호텔 스위트룸이 주는 쾌적함과는 다른 종류의 '압도'가 여기 있습니다. 160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제국과 종교와 망명과 복원이 켜켜이 쌓인 이 절벽 위 건물은, 어떤 실내 공간도 재현할 수 없는 감각을 만들어내요.
저는 와인을 좋아하고 좋은 커피를 좋아하고 새벽 공항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런 장소를 좋아해요.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뭔가를 남기는 공간들.
수멜라 수도원 앞에 서면, 당신은 어떤 질문이 먼저 떠오를 것 같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