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다리 위에서 멍하니 서 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강남 방향으로 빛이 쏟아지던 저녁이었는데, 아마 2022년 늦가을쯤이었을 거예요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 납니다). 버스가 한강 위를 지나는 그 짧은 몇 분 동안, 갑자기 이 다리가 얼마나 긴 건지,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는 어디 있는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다리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그 순간 이후로 세계 최장 다리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됐습니다.
뭐랄까, 여행 에디터라는 직업이 그렇습니다. 가장 작은 호기심이 가장 긴 취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강남 한강변에서 시작된 이 의문이 결국 단둥, 칭다오, 상하이까지 이어졌으니까요.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다섯 개를 소개합니다. 단순히 '긴 다리 목록'이 아니라, 그 다리들이 실제로 어떤 풍경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 단양-쿤산 고속철도 육교, 중국 — 164.8km

압도적입니다.
164.8킬로미터. 서울에서 대전까지 거리와 비슷합니다. 이 다리 하나가 그 거리를 덮고 있다는 게 솔직히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2011년 개통한 이 구조물은 중국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의 일부로, 다리 전체가 고속철도 전용입니다. 다리 위로 기차가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립니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다리를 '다리'로 봐야 하는지 '고가도로'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토목 공학계에서 여전히 의견이 갈립니다). 강이나 해협을 건너는 게 아니라 평지 위를 높게 지나가는 구간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세계 최장 다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구간을 지나가는 기차를 타보면 창문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교각만 보인다고 합니다. 아마 좀 단조로운 풍경일 거예요 (저도 아직 직접 확인 못 했습니다). 언제 한 번 상하이발 고속철도를 예약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매번 다른 취재가 먼저 생깁니다.

## 2. 티안징 대교, 중국 — 113.7km
두 번째도 중국입니다.
역시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의 일부. 113.7km. 이 다리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 1위가 됐을 텐데, 단양-쿤산 뒤에 2위로 밀려 있습니다. 중국이 2010년대에 고속철도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게 확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시입니다.
참, 이 두 다리가 같은 철도 노선의 일부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꽤 놀랐습니다. 세계 1위와 2위가 같은 기차 안에서 연속으로 경험된다는 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여행 잡지를 15년 만들면서 숫자에 무뎌진 편인데, 이건 좀 달랐습니다.
티안진 대교는 텐진(천진)과 쑤저우 사이를 지납니다. 창장 삼각주의 평야 지형 위를 달리는 구간이라 해수면보다 약간 높은 고도를 유지합니다. 강남에서 텐진까지 직항이 있으니 언제 취재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행시간 약 2시간 20분).
## 3. 강화-웨이하이 고속철도 육교, 중국 — 105.8km
세 번째도 중국.
솔직히 이쯤 되면 '세계 최장 다리 TOP 5'가 아니라 '중국 고속철도 인프라 특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치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105.8km, 2012년 개통. 이 구조물은 산둥성의 내륙 지역을 통과합니다.
이 다리의 특징은 지형이 상대적으로 복잡한 구간을 지난다는 점입니다. 평야만 통과하는 게 아니라 작은 구릉 지형도 포함되어 있어서, 교각 높이가 구간마다 다릅니다 (최대 약 30m 이상인 구간도 있습니다, 현지 취재 자료 기준). 고속철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조금 더 다채롭다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솔직한 의문 하나. 이렇게 긴 다리들이 여행 목적지로서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아, 여기가 세계 3위 다리구나' 하고 끝나는 건지, 아니면 그 자체로 어떤 경험을 주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 4. 웨이난 웨이허 대교, 중국 — 79.7km
드디어 숫자가 좀 줄었습니다.
79.7km. 아직도 엄청나게 깁니다. 이 다리는 앞의 세 개와 성격이 다릅니다. 중국 산시성(섬서성) 웨이난 지역의 웨이허(위수)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구간으로, 실제 강 위를 지나는 비중이 앞 다리들보다 높습니다. 2008년 개통.
웨이난은 시안에서 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시안은 제가 꽤 좋아하는 도시입니다. 병마용 취재로 두 번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시내 한쪽에서 고속철도 고가 구조물이 지평선을 가르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게 이 다리의 일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게 됩니다.
참, 웨이허 강은 황하의 지류입니다. 중국 역사에서 꽤 중요한 강이에요. 그 위를 시속 200km가 넘는 기차가 달리는 구조물이 덮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시간의 층위가 충돌하는 느낌을 줍니다.
## 5. 방파제 교량, 미국 루이지애나 — 38.6km
드디어 중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폰차트레인 코즈웨이(Lake Pontchartrain Causeway).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인근에 있는 이 다리는 38.6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수상 다리 중 하나입니다 (정확한 순위는 측정 기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1956년에 처음 개통됐고, 1969년에 병렬 구간이 추가됐습니다.
이 다리가 리스트에서 유독 흥미로운 이유가 있습니다. 중간 지점에서는 양쪽 어디에도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38.6km 중 약 8km 구간에서 운전자가 사방을 봐도 물만 보입니다. 수평선과 하늘과 다리만. 뭐랄까, 그 풍경이 좀 무섭기도 하고 압도적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루이지애나에서 운전을 할 기회가 있다면 꼭 이 다리를 직접 건너보고 싶습니다. 통행료는 편도 기준 약 6달러 수준이라고 하는데 (변동 있을 수 있으니 현지 확인 필요), 그 가격에 세계적인 풍경을 경험하는 건 나쁜 거래가 아닙니다.
아쉽게도 뉴올리언스는 제가 아직 못 가본 도시입니다. 재즈, 크레올 음식, 그리고 이 다리. 세 가지 이유가 이미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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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강으로 돌아옵니다.
강남과 용산을 잇는 한강 다리들 — 동작대교, 반포대교, 한남대교 — 의 길이는 대략 1km 안팎입니다. 세계 최장 다리와 비교하면 164분의 1 수준이에요. 근데 그 짧은 1km 위에서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경험은, 164km짜리 다리 위 고속철도 안에서는 아마 불가능한 종류의 경험일 겁니다.
크기가 항상 경험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걸 여행 에디터로 오래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치만 164.8km라는 숫자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당신이 지금 가장 자주 건너는 다리는 어디인가요? 그 다리 위에서 한 번이라도 멈춰서 아래를 내려다본 적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