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지하철을 매일 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얼마나 깊이 내려온 걸까. 5호선 광화문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멍하니 올려다봤던 적이 있는데, 그게 꽤 길더라고. 근데 서울은 사실 '깊은 지하철역' 순위에서 세계 최상위권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Top 5 안에는 들어가는 역이 있긴 한데 (이건 나중에 설명할게요), 진짜 깊은 곳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하철역 깊이라는 게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그 도시가 어떤 역사를 겪었는지, 지형이 어떤지, 전쟁을 대비했는지 아닌지가 고스란히 숫자에 담긴다. 깊을수록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도 길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보통 핸드폰을 보거나 천장을 보거나 한다. 참, 요즘은 그 에스컬레이터 시간이 숏폼 영상 하나 길이랑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뭐랄까, 그게 더 슬프다.
## 1. 평양 지하철 부흥역 (Puhŭng Station) — 약 110m

솔직히 이걸 1위에 놓는 게 맞나 싶다.
공식 수치가 불명확하다. 북한이 공개한 자료 기준으로 약 100~110m 깊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더 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관광객 일부가 들어간 적은 있지만 정확한 측량은 어렵다). 1973년에 개통된 평양 지하철은 냉전 시대 핵 대피소 개념으로 설계됐다. 그래서 이렇게 깊다.

역 내부 사진을 보면 화려한 샹들리에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벽화가 가득하다. 어떻게 보면 예술적이고, 어떻게 보면 당혹스럽다. 모스크바 지하철 미학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많다.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상당해서 내려가는 시간만 3~4분이라는 증언도 있다. 실제로 타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이 수치는 전적으로 외부 자료에 의존한 것이다.
## 2. 키이우 지하철 아르세날나역 (Arsenalna Station) — 약 105.5m

가장 깊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역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아르세날나역은 기네스 기록에도 등재된, 검증된 세계 최심도 지하철역이다 (북한 자료를 공식 채택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으니까). 1960년에 개통됐고, 드니프로강 언덕 지형 때문에 이렇게 깊어졌다. 자연 지형 자체가 이 역을 만들었다는 게 흥미롭다.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연속으로 타야 한다. 총 이동 시간이 5분 가까이 된다는 기록도 있다. 퇴근 시간에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 지쳐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다.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이 역이 시민 대피소로 사용됐다는 뉴스를 봤을 때, 설계 당시의 깊이가 우연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하철 요금은 우크라이나 흐리우냐 기준 8흐리우냐 (한화 약 270원, 2023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깊은 역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 중 하나에 있다는 아이러니.
## 3. 모스크바 지하철 파크 포베디역 (Park Pobedy Station) — 약 84m
모스크바 메트로. 이름만 들어도 뭔가 묵직하다.
파크 포베디역은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가장 깊은 역으로, 2003년에 개통됐다. 84m라는 깊이도 깊지만, 에스컬레이터 길이가 무려 126m — 세계에서 가장 긴 축에 속한다.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빠른데도 타는 시간이 3분을 훌쩍 넘긴다.
근데 모스크바 메트로의 진짜 매력은 깊이가 아니라 미학이다. 역마다 대리석과 모자이크, 조각상이 다르다. 파크 포베디역도 2차 세계대전 승리를 주제로 한 대형 벽화로 유명하다. 뭐랄까, 지하에 미술관을 만든 느낌이다. 서울 5호선 마곡나루역이나 9호선 역들도 예쁘긴 한데 (솔직히 나는 9호선 디자인을 좋아한다), 스케일 차이가 있다.
모스크바 메트로 1회 승차 요금은 약 57루블 (한화 약 850원, 2023년 기준). 아마 지금은 바뀌었을 거예요, 확인 필요.
## 4.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아드미랄테이스카야역 (Admiralteyskaya Station) — 약 86m
잠깐, 이게 파크 포베디보다 깊다.
맞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에서 가장 깊은 아드미랄테이스카야역은 약 86m로, 단일 역 기준으로는 파크 포베디보다 약간 더 깊다. 순위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3위와 4위가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이다. 2011년에 늦게 개통됐는데, 이유가 재미있다. 지하수 문제 때문에 공사가 수십 년 지연됐다. 1997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완공까지 1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체가 습지 위에 세워진 도시라 지하 공사가 특히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역이 그 상징적인 예시다. 에스컬레이터가 역시 길고, 승강장에 내려서면 의외로 고요하다는 후기가 많다. 지상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는 깊이.
이 역에서 나오면 바로 네프스키 대로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갑자기 사람들이 쏟아지는 그 전환이, 여행자로서는 꽤 극적인 경험이라고 한다.
## 5. 서울 지하철 — 광화문역, 그리고 사실은 다른 역
드디어 서울 얘기.
서울 지하철에서 가장 깊은 역은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이 5호선 광화문역을 꼽는데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다르다. 서울 지하철 중 가장 깊은 역으로 자주 언급되는 곳은 5호선 마천역이나 일부 구간인데, 정확한 최심도 역에 대한 공식 자료가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 아마 그럴 거예요, 확인 필요.
광화문역은 지하 약 30m로, 서울 기준으로는 상당히 깊은 편이다. 근데 세계 기준으로 보면 Top 20에 들기도 쉽지 않다. 그치만 서울 지하철의 특이점은 따로 있다. 서울 9호선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들이 개통되면서 새로운 심도 기록이 나오고 있다. GTX-A 수서역은 지하 60m 이상으로 내려간다. 이건 진짜다.
GTX-A 개통 초기에 수서역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탔을 때, 어디 해외 대도시에 온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 이런 깊이의 인프라가 생겼구나 싶어서. 요금은 노선에 따라 다른데, GTX-A 기준 수서-동탄 구간이 4,150원이다 (2024년 기준). 일반 지하철보다 비싸지만 속도 차이가 있으니까.
참, 서울 5호선 광화문역에서 지하 5층까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아침 08:47에 타면 이미 사람이 꽉 차 있다. 그 에스컬레이터 안에서 모두가 핸드폰을 보고 있는 풍경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서울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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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역들을 나열하다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냉전, 전쟁 대비, 어려운 지형. 깊이는 두려움에서 나왔다. 근데 그 두려움이 만들어낸 공간들이 이제는 수백만 명의 일상이 됐다.
당신이 매일 타는 그 지하철역, 플랫폼에 서서 한번쯤 올려다본 적 있나요?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지금 내가 땅속 몇 미터에 있는지. 사실 그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지하철 타기가 갑자기 좀 이상해진다. 좋은 의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