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야산(高野山)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오사카역에서 아침 08:47 출발 열차를 탔다. 커피 한 잔도 못 마신 채로. 난카이 고야선을 타고 고쿠라쿠바시역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면, 해발 약 900m의 산 위에 갑자기 도시 하나가 펼쳐진다.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이고, 마을이라기보다는 어떤... 다른 차원의 공간이랄까. 1,200년 넘는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 고야산은 홍법대사 구카이(空海)가 816년에 세운 진언종의 성지이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근데 솔직히 그 사실보다 중요한 건,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뭔가 달라진다는 거다. 그게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1. 오쿠노인 새벽 산책 — 무조건 아침이어야 한다
오쿠노인(奥之院). 고야산의 심장 같은 곳.

2킬로미터 넘는 삼나무 숲 사잇길에 약 20만 개의 묘비와 공양탑이 늘어서 있고, 그 끝에 구카이가 영면했다고 전해지는 등롱당이 있다. 낮에 가도 분위기는 있다. 그치만 새벽 06:00 전후,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가면 완전히 다른 장소가 된다. 삼나무 수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좁고, 이끼는 더 푸르고, 사람은 거의 없다. 딱 두 가지만 들린다. 자갈 밟는 소리와 새 소리. 나는 그날 아침 40분쯤 혼자 걸었는데, 중간에 한 번 울 뻔했다 (왜인지는 나도 몰랐다). 입장료는 없다. 오이치노하시 다리 앞부터는 음식 섭취와 사진 촬영에 제한이 생기니 주의.
2. 슈쿠보(宿坊) — 사찰 숙박, 해볼 만하냐고요?

고야산에는 약 117개의 사원이 있고, 그중 50개 이상이 슈쿠보(사찰 숙박)를 운영한다. 1박 요금은 1인 기준 보통 12,000엔~18,000엔 사이 (조석식 포함). 저녁은 정진요리(精進料理), 즉 고기·생선 없이 채소와 두부로만 차린 식사다. 처음엔 좀 막막했다. 두부를 그렇게 다양하게 조리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아침 공양은 06:00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그 전에 아침 예불(勤行)에 참여할 수 있다. 참여는 선택이지만, 한 번쯤은 해보는 걸 권한다. 비몽사몽인 채로 법당에 앉아서 독경 소리를 듣고 있으면 — 뭐랄까,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고 싶지 않아진다. 내가 묵었던 곳은 에코인(恵光院)이었는데, 영어 안내가 잘 되어 있어서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접근하기 편한 편이다.
3. 단조가란(壇上伽藍) — 진홍색 곤폰다이토의 충격

고야산 서쪽에 위치한 단조가란은 구카이가 처음으로 사원을 세운 신성한 구역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곤폰다이토(根本大塔), 높이 약 48.5미터짜리 진홍색 탑. 숲 사이에서 갑자기 이게 나타나면 진짜 멈추게 된다. 배경이 너무 달라서. 주변 삼나무들은 수백 년 된 것들이고, 그 앞에 선명한 붉은색 탑이라니. 계절마다 표정이 다르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초가을 (아마 10월 초였을 거예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가물가물)이라 살짝 단풍이 섞여 있어서 색 대비가 남달랐다. 곤폰다이토 내부 입장료는 500엔, 내부에는 밀교 세계관을 형상화한 벽화와 불상이 있다. 시간이 허락하면 곤도(金堂)와 미에도(御影堂)도 같이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4. 고야산의 먹거리 — 기대치를 조정하고 가세요

솔직히 말할게요. 고야산은 맛집 성지가 아니다. 음식점 수 자체가 많지 않고, 선택지도 제한적이다. 그치만 몇 가지는 꽤 괜찮다. 일단 고야두부(高野豆腐).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해서 만든 건두부인데, 식감이 묵직하고 국물을 잘 흡수한다. 고야산 어디서나 정진요리 메뉴에 들어가 있다. 참, 이치노하시 부근 골목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먹은 참깨두부(胡麻豆腐)는 850엔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고소했다. 카페는 거의 없다. 여기가 가장 힘들었다 (나는 하루 네 잔 마시는 사람인데, 고야산에서 커피 찾기는 미션이다). 센본구치역 근처에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가 한두 곳 있는데, 아마 영업시간이 불규칙할 거예요 — 확인하고 가세요.
5. 고야산에 가는 방법 — 생각보다 단순하다
오사카(난바역) 기준으로 설명한다. 난카이전철 난바역에서 고야산행 특급 열차를 타면 된다. 고쿠라쿠바시역까지 약 1시간 20분, 거기서 케이블카로 5분. 총 소요 시간은 환승 포함 1시간 30분~1시간 50분 정도. 요금은 편도 약 1,400엔~1,500엔 (특급 요금 포함). 고야산에 도착하면 버스 1일권(830엔 정도)을 사는 게 이동하기 편하다. 렌터카는 없어도 된다. 섬처럼 완결된 공간이라서. 아, 그리고 고야산은 겨울에 눈이 꽤 쌓인다. 12월~2월에 가면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데, 일부 시설은 운영을 축소하니 미리 체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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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야산을 당일치기로 갔다가 슈쿠보에서 하룻밤을 더 묵고 돌아왔다. 원래 계획에 없던 일박이었다. 이상하게 내려가기가 싫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불교에 특별히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닌데. 근데 그날 밤 법당에서 촛불 꺼지는 거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내려놓게 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게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당신은 고야산에서 뭘 내려놓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