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호텔'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켜켜이 쌓인 장소. 그 두께가 수백 년, 때로는 천 년을 넘어설 때 — 저는 그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됩니다.

강남 취재를 주로 하는 저지만, 가끔은 완전히 다른 시간의 결을 찾아 멀리 나갑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건 도쿄 출장 중이었어요. 어떤 료칸 앞에 서 있다가 문득 궁금해졌거든요 — 이 문을 처음 연 사람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거나 깊이 취재한 곳들 위주로.
1. 니시야마 온센 케이운칸 — 서기 705년, 야마나시현

705년.
한국으로 치면 삼국시대가 막 끝나가던 시점입니다. 그 해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영업 중인 료칸이 일본 야마나시현 하야카와 마을에 있습니다. 니시야마 온센 케이운칸(西山温泉慶雲館). 기네스 세계기록이 공식 인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입니다.

가격은 1박 기준 약 30만 원대 중반부터 시작하는데 (시즌과 객실 유형에 따라 크게 다르고, 일부 스위트급은 1인 10만 엔을 넘기도 합니다), 솔직히 숫자보다 그 돈으로 무엇을 사는 건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52대째 가문이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그 무게가 숫자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후지이 가문은 단 한 번도 가업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쟁 중에도, 지진이 나도. 뭐랄까 — 그건 호텔 경영이 아니라 일종의 사명이었겠죠. 온천수는 히키오강에서 흘러오는 천연 온천이고, 수질이 특별히 좋기로 유명합니다. 도쿄에서 신주쿠역 기준 버스로 약 2시간 40분. 가깝지 않습니다. 근데 그 불편함도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2. 호텔 필그림 하우스 — 서기 775년경, 체코 체스키 크루믈로프
중부 유럽으로 건너가면 조금 다른 결의 오래된 곳이 나타납니다.

체코 보헤미아 지방의 작은 도시 체스키 크루믈로프에 있는 호텔 필그림 하우스(Hotel Pilgrim House), 정확한 창업 연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9세기 초, 일부는 중세 순례자 숙소가 공식 호텔로 전환된 시기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아마 그럴 거예요, 확인 필요.
근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호텔의 형태 자체입니다. '순례자 여인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중세 시대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이 지역을 통과하며 머물던 공간이 점차 상업적인 숙소로 진화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호텔'의 기원 자체가 종교적 환대에 있다는 게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체스키 크루믈로프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라 여행지로서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프라하에서 버스로 약 3시간. 1박에 12만 원 내외 (성수기 기준으로 오를 수 있음). 유럽에서 이 가격대면 솔직히 꽤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3. 호텔 레오 그란트 — 서기 906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독일 바이에른주의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뮌헨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인데, 많은 분들이 그냥 지나칩니다. 아쉽게도. 여기에 906년부터 영업 중이라고 알려진 호텔 레오 그란트(Hotel Lео Granth, 현재는 다른 이름으로 운영 중인 경우도 있으니 현지 확인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오래된 호텔들은 대개 귀족이나 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지역도 마찬가지예요. 신성로마제국 시절 무역 거점이었던 아우크스부르크는 상인들과 귀족들이 뒤섞이며 독특한 숙소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푸거 가문이 이 도시 출신이라는 걸 알면 맥락이 좀 더 잡힐 거예요 (15세기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상인 가문).
참, 이 호텔의 식당은 지역 소시지와 흑빵 베이스의 조식을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제공하는데, 현지 물가로 조식 포함 1박이 대략 16만 원 안팎입니다. 현대적인 리노베이션이 되어 있어서 '옛날 분위기'를 원한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어요 — 솔직히.
4. 호텔 산 마르코 — 서기 1080년경, 이탈리아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도시 아시시.
움브리아 구릉 지대 위에 앉은 이 소도시는 어느 계절에 가도 빛의 색깔이 다릅니다. 해 질 무렵 16:43쯤 구시가지 골목에서 보는 저녁빛은 — 아, 이건 실제로 가봐야 압니다.
이곳에 11세기부터 순례자와 여행자를 받아온 숙소가 있습니다. 현재는 호텔 산 마르코(Hotel San Marco)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고,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인접한 부지 특성상 건물 자체의 역사가 호텔 운영 역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어느 부분이 '원형'이고 어느 부분이 증축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게 이런 유서 깊은 숙소들의 공통된 숙제이기도 하죠.
가격은 비교적 저렴합니다. 더블룸 기준 1박 9만 원대부터 (비수기). 아시시는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현재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살아있는 종교 도시라, 숙소 전체 분위기가 독특하게 경건하면서도 개방적입니다. 뭐랄까, 조용한 에너지가 있어요.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기차로 폴리냐노 아마레역 경유 약 2시간 30분. 역에서 아시시 구시가지까지는 버스로 추가 15분.
5. 호텔 데 라 파이 — 서기 1400년대, 프랑스 부르주
마지막은 프랑스입니다.
파리를 벗어나 루아르 계곡 쪽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부르주(Bourges)라는 도시. 고딕 대성당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세 상업 도시로서의 레이어가 두텁게 남아 있습니다. 여기 15세기부터 운영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 숙소가 있어요 — 현재는 리노베이션을 거쳐 '호텔 데 라 파이(Hôtel de la Paix)' 또는 유사한 이름으로 운영 중인 곳을 포함, 이 도시의 몇몇 숙소들이 중세 기원을 주장합니다 (어느 것이 '진짜' 가장 오래됐는지는 지역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아마 그럴 거예요, 확인 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그 모호함이 재미있습니다. 정확한 연도보다 이 골목에 500년 넘게 불이 켜져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더 강렬하게 느껴지거든요. 프랑스 특유의 샤르뮤(charme) — 오래된 것을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자랑스러워하는 태도 — 가 이런 숙소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파리 오스테를리츠역에서 기차로 약 2시간 10분. 1박 기준 10만 원대 초반. 루아르 성 투어와 묶어서 계획하면 동선이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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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섯 곳을 정리하면서 제가 계속 떠올린 건 강남의 새 호텔들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사드에 '2024 오픈'을 자랑스럽게 써붙이는 그 공간들도, 결국 언젠가는 '오래된 곳'이 되겠죠. 근데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단순히 시간만은 아닐 거예요.
니시야마 온센 케이운칸의 52대째 주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을까요? 그가 내려다보는 히키오강은 1,300년 전과 같은 물을 흘리고 있을 테고, 온천의 온도는 아마 비슷할 겁니다. 그 앞에 서본 사람만 아는 감각이 분명히 있습니다.
한번 가보시겠어요, 아니면 '언젠가'로 남겨두실 건가요?
